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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노마드의 방랑일기
제주 4.3이 머우꽈? [배포용 책자] 본문
제목 : 4.3이 머우꽈? → 표준어로 4.3이 무엇입니까?
기억투쟁 70년 제주 4.3
1948~2018
* 배포용 책자에서 알아야 할 내용만 담아봤어요.
4.3 들어보긴 했는데
우리는 제주 4.3이 제주 사람들이 억울하게 많이 죽은 사건이라는 정도는 압니다. 그런데 또렷하게 그려지지가 않는 이유는 뭘까요?
그게 왜 일어났는지, 언제 적 이야기인지 그리고 그걸 내가 왜 알아야 하는지에 대해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모르는 게 당연할 수도 있습니다. 현대사 교육이 제대로 이뤄져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일제가 물러간 뒤에도 친일파가 다시 권력을 잡았고, 그 과정에서 저지른 과오들을 그들은 숨겼던 거지요. 그리고 그들 권력이 오늘날 적폐세력으로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그동안 숨겨왔을 밖에요.
왜 그런 억울한 죽음이 있었는지, 아니 그보다도 그 사건이 내 삶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말입니다. 잘못된 과거의 올바른 청산은 그 뿌리부터 알아야 제대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 뿌리는 바로 해방정국에서부터 살펴야 찾을 수 있습니다.
1948년 4월 3일
이제 본격적으로 1948년 4월 3일의 일을 알아봅시다. 이날은 남쪽만의 단독 선거인 5.10 선거를 한 달가량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앞서 보았던 것처럼 제주도민들에 대한 외부세력, 특히 서북청년회의 폭력은 법 위에서 군림하는 것 같았습니다. 여기에 남쪽만의 단독 선거는 사태를 더욱 불안한 쪽으로 몰고 갔습니다. 둘로 쪼개진다면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실제 2년 뒤에 6.25 전쟁은 일어났고, 오늘날에도 남북 분단으로 한반도의 긴장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그걸 막겠다는 것이 그날 경찰지서를 습격한 사람들이 내세우는 대의명분입니다. 이게 본격적인 4.3의 시작입니다. 제주도 내 24개 경찰지서 중 12개가 습격당하고 14명이 사망했습니다. 그들은 '탄압이면 항쟁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앉아서 죽느냐, 서서 싸우느냐'의 선택 밖에 없는 상황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격'의 무장투쟁을 선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정도의 갈등이나 충돌은 제주도 밖 한반도에서도 일어났습니다. 분단은 전쟁을 초래할지도 모르는 사태이기에, 남쪽만의 선거를 반대한다는 주장입니다. 제주도만의 사태는 아니었던 것이지요. 그런 만큼 이때까지의 제주도 상황은 경찰 병력만으로 사태를 일찍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정도입니다.
사실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며 민족의 이익을 위해 머리를 맞대로 평화적으로 사태를 풀어갔더라면 이날의 사건은 3만 명 희생자를 만든 엄청난 사태로까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에게 상호존중, 화해, 협력, 평화, 인권의 가치가 더욱 소중하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게 합니다.
4.28 평화 협상과 오라리 방화사건
미군정 경찰은 4.3을 '북한과 연계된 공산주의자들의 난동'이라고 선전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거짓임이 밝혀졌습니다. 당시에도 이런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같은 미군정 관리였지만 검찰총장 이인은 이 사태의 근본 원인을 미군정 관공리들의 부패에서 찾았습니다. 그러면서 "고름이 제대로 든 것을 좌익계열에서 바늘로 이것을 터뜨린 것이 제주도 사태의 진상"이라고까지 말했을 정도입니다.
즉, 이념 문제가 본질이 아니라고 평가한 것이지요.
군(국방경비대) 역시 사태의 본질은 제주도민과 경찰, 서청 사이의 충돌이라고 이해하여 이 사건에 개입하기를 꺼려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군대도 경찰 이상으로 사태 진압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됩니다. 미군정의 지휘를 받아야만 했으니까요. 4월 말쯤에 이르자 미군정은 군부대에도 4.3 진압의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당시 제주주둔군 9 연대의 연대장 김익렬 중령은 사태를 평화적으로 풀어가려고 노력했습니다. 현명한 판단이었지요. 그리하여 4.3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나지 않은 4월 28일에 4.3을 시작한 무장대 측과의 협상 테이블을 마련합니다.
4월 28일, 9 연대장 김익렬 중령과 무장대 사령관 김달삼은 치열한 논쟁 끝에 극적인 타결을 이루어 성공적으로 협상을 끝내게 됩니다.
72시간 내에 전투 중지와 점진적 무장해제 그리고 무장대에 대한 사실상의 신변 보장이 합의 내용이었습니다.
만약 합의가 그대로 지켜지기만 했어도 그 시기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의 4.3 학살과 같은 비극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평화협상을 깨는 방해공작이 5월 1일부터 시작됩니다. 제주시 오라동 연미 마을에 무장대를 가장한 괴청년들이 몰려와 불을 지르고 난동을 피운 겁니다. 미군정은 이 장면을 하늘과 땅에서 입체적으로 촬영했고 그 필름은 곧바로 [제주도의 5월]이라는 선전용 기록영화가 되었습니다. 무장대가 이 마을을 방화한 것으로 조작하기 우한 술책이라 할 수 있지요. 물론 목적은 평화협상을 깨뜨리는 데 있었습니다. 평화가 오고 진상이 드러날 경우 입장이 곤란해질 미군정 경찰이 배후에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5월 3일에는 평화혀상을 믿고 산에서 내려오던 민간이들에게 총격을 가했습니다. 이 역시 계산된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미군정은 사태를 파악하고 항의하던 김익렬 연대장을 해고해 버립니다. 그러고 나서 그 자리에 강격파인 박진경 중령을 임명합니다. 박진경은 구 일본군 소위 출신으로 미군정장과 딘 소장의 총애를 받던 인물입니다. 그는 취임사에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방해는 제주도 폴동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키더라도 무방하다"라고 했을 정도로 김익렬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국가 지정 추념일인 4월 3일
'3만'은 숫자로 볼 때는 무미건조하겠지만,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그 가족들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엄청난 아픔입니다. 그렇게 많은 숫자인 현재 제주도민들 중 상당수가 이 아픔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됩니다.
그런데도 오랜 기간 동안 제주 4.3은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단어였습니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이 직, 간접적으로 이 사건에 책임이 있기에 은폐해 왔던 겁니다. 이렇게 잘못된 기득권 세력의 뿌리는 해방정국에서부터 찾아질 수 있습니다. 그 원조 세력의 억압으로 인해 그동안 침묵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는 결국 진실을 말하게 됩니다. 강요된 침묵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1987년 6월 항쟁의 민주화 열기는 4.3의 억울한 목소리들을 세상 밖으로 터져 나오게 했습니다. 1989년 4월 3일, 제주시민회관에서 공개적으로 추모제 행사를 처음 가졌습니다. 숨어서 추모하던 사람들이 밝은 대낮에 '41주기 4.3 추모제'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때의 진상규명 노력은 정부의 탄압을 초래하는 일이었기에 대단한 용기와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그럼에도 두려움을 떨치고 광장으로 나섰던 촛불혁명처럼 4.3은 말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평범하지만 용감했던 기민들의 노력은 결실을 맺어 2000년에 4.3 특별법이 제정 공포되었고, 2003년에는 <제주 4.3 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발간되었습니다. 그 뒤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 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도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라며 국가 권력을 대표하여 공식적으로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2014년 박근혜 정부는 4월 3일을 국가 지정 추념일로 결정하였습니다. 국가가 나서서 억울한 죽음을 추념한다는 의미입니다.
제주 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1947년 3.1절 대회로부터 시작된 4.3은 분단에 반대하고 통일된 나라를 염원하던 제주도민의 열망의 표현이었습니다. 그것은 제주도민만이 아닌 온 국민의 염원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4.3은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국민의 생명권이 무참히 유린된 역사이기도 합니다. 4.3의 엄청난 희생은 역설적으로 인간 생명의 고귀함과 인권의 소중함을 깨우쳐 줍니다.
4.3 희생자들의 원혼과 유 족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인권, 평화, 통일의 나라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어야 합니다. 전후 세계질서가 냉전체제로 재편되고 민족이 분단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가장 큰 고통을 당했던 아픔의 섬 제주도는 미-중 간의 신냉전이 시작되고 있는 오늘날 또다시 그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만드는 평화의 보루, 진정한 '세계 평화의 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4.3은 대한민국의 역사로 온전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습니다.
다 담을 수는 없지만 크게 몇개만 담아봤어요.
오늘이 4.3 추념일 이어서 급하게 옮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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